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서울 성지순례 추천, 새남터 성당에서 마음이 무거워졌던 이유

by 미카엘라 성지여행 2026. 5. 16.

택시에서 내리면서 처음 든 생각은 "여기가  새남터 순교성지가 맞나?"였습니다. 기와 처마가 층층이 올라간 한옥 건물이 눈앞에 떡하니 서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원불교 건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곳이 왜 서울 한복판에서 가장 묵직한 공간인지 바로 이해가 되더군요. 새남터 순교성지, 가볍게 들어갔다가 꽤 오래 앉아 있다 나왔습니다.

새남터 순교성지 외관사진
새남터 순교성지 외관사진

억새밭에서 형장으로, 새남터가 품은 역사

새남터라는 지명은 '새나무터'에서 유래했습니다. 억새와 나무가 무성한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한적한 시골 들판이 연상되지만, 조선 시대 이곳의 실제 기능은 전혀 달랐습니다. 군사들의 연무장이자 국사범을 처형하던 형장(刑場), 즉 사형을 집행하던 공식적인 처형 공간이었습니다.

 

성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이곳은 새남터 형장입니다"라는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아래에는 장개틀이 놓여 있었고, 바닥 유리 아래에는 당시 형장의 모래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인사를 드리는데, 마음이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무거워졌습니다. 관람이 아니라 추모라는 느낌이 먼저 왔습니다.

 

새남터에서는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의 천주교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곳은 일반 신자들이 아닌 성직자들이 주로 처형된 장소로, 순교(殉敎)한 성직자 14위 중 11위가 바로 이 땅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순교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그리스도를 증거 한 순교자 14위의 동판화(銅版畵)가 새겨진 추모의 장이 맞이합니다. 동판화란 구리 판에 새긴 부조 형식의 초상화입니다. 그 앞에 섰을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문을 받으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죽음 앞에서 두렵지는 않으셨는지, 그럼에도 끝까지 배교(背敎)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인간으로서의 경외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솔직히, 고문도구에 묶이기만 해도 바로 무너질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신념이 그만큼 비범했다는 뜻이겠지요.

 

이 중 프랑스 신부님들의 사연 앞에서는 감사하다는 말 외에 달리 떠오르는 말이 없었습니다. 조선까지 오는 항해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고, 도착하더라도 언제 붙잡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신앙을 전하러 왔다는 것이 단순한 용기가 아닙니다. 그분들이 먼 이국 땅에 오셨기에 제가 지금 성당에 나갈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니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순교자현양위원회에 따르면 새남터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사제들의 순교지로 가장 상징적인 장소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옥 성당이라는 선택, 건축이 말하는 것

새남터 기념성당의 외관을 처음 마주했을 때, 일반적인 고딕(Gothic) 양식의 성당을 기대하던 분이라면 분명 당황할 것입니다. 고딕 양식이란 유럽 중세 시대에 발달한 건축 방식으로,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구치는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입니다. 그런데 새남터 성당은 웅장한 조선 기와지붕과 처마 선을 갖춘 한옥 구조로 지어져서 신기했습니다.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그냥 벌어졌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웅장했습니다. 제대(祭臺) 앞에는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었고, 뒷벽에는 103위 성인들의 부조상(浮彫像)이 돌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석굴암처럼 한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났고, 서양 성당에서 받는 화려함보다 오히려 묵직하고 깊은 경건함이 느껴졌습니다. 제대 앞에 나아가 9위 성인들의 유해에 인사를 드리는 동안, 손이 자연스럽게 모아졌습니다.

 

성당 입구 앞에는 자비로운 예수님 성화(聖畵)가 걸려 있었습니다. 예수님 심장에서 두 줄기 빛이 뻗어나오는 그림인데, 처음 보는 순간 그 자리에 한참 멈춰서 있었습니다. 결국 성물방에 들러 그 성화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그 빛이 저를 밝혀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기도한다는 것, 신앙을 생각한다는 것

기념관 유해실(遺骸室)에는 김대건 신부 외에도 타 지역에서 순교하신 5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묵상과 기도를 드리면 청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신랑이 세례를 잘 받을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질지 아닐지를 떠나, 그 공간에서 무언가를 간절히 바란다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정리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25세의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의 이야기는 이곳에 올 때마다 다르게 다가옵니다. 한국인 최초의 사제(司祭)로, 사제란 가톨릭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성사를 주재하는 성직자를 뜻합니다. 그 젊은 나이에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쉽게 지나쳐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25세라면 사회 초년생으로 이제 직장생활 시작할 때인데 그런 나이에 굳건한 신앙으로 순교를 택하셔서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사제로서 사목을 더 오래 했으면 좋았을 텐데 기간이 너무 짧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새남터 성지 방문을 계획하시는 분들께는 몇 가지 실용적인 안내도 드리고 싶습니다.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으며, 성당 내부 관람 시 미사 시간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장은 단정하게 갖추고, 야외 십자가의 길(Via Crucis) 기도처도 놓치지 않으시길 권합니다. 십자가의 길이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수난의 여정을 묵상하는 14처 기도 방식입니다. 십자가의 길에서 기도 드리며 성인들의 희생에 감사드리고 나를 뒤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성지를 나서면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남았습니다. 순교자들이 피로 지켜낸 신앙을 저는 얼마나 편안하게, 별 생각 없이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원한 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 우리가 자유롭게 성당에 나가고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곳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분명하게 일깨워 줍니다. 새남터 순교성지는 제게 가슴 한 곳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최고의 성지였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이 어수선할 때나 내가 잘 살고 있나 의문이 들 때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