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라는 말을 들으면 혹시산티아고 순계길처럼 엄청 많이 걷는 고행부터 떠오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년(2025년 8월) 희년 기간에 부산 남천성당을 다녀온 뒤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지순례는 거창한 이동이나 특별한 준비보다도, 잠시라도 마음이 멈추고 쉬어가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느꼈기 때문입니다.
친정이 부산이라 가족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방문하게 되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단순히 성당 건물만 둘러보는 일정이 아니라 미사와 성모동산, 그리고 성당 카페까지 경험하다 보니 하루 일정 전체가 천천히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부산처럼 늘 사람 많고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안에서 이런 조용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여행을 가면 유명 맛집이나 바다부터 찾는 편인데, 이번에는 오히려 남천성당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부산 여행 중 잠깐 들른 장소였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훨씬 편안해져 있었습니다.

희년의 의미와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
작년(2025년)은 교황 프란치스코 께서 선포하신 희년 기간이었습니다. 희년은 가톨릭 교회에서 특별히 은총을 강조하는 시기로, 지정된 성지를 방문하고 고해성사와 영성체 등의 조건을 갖추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해입니다. 평소 종교생활을 오래 해오신 분들에게는 의미가 크지만, 저처럼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런 계기를 통해 잠시 삶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부산교구의 주교좌성당인 남천성당은 희년 순례지 가운데서도 상징성이 큰 장소였습니다. 실제로 방문해 보니 일반 성당과는 분위기 자체가 조금 달랐습니다. 성당 규모도 상당히 크고 교구청 건물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어 부산 교구의 중심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종교를 잘 모르는 사람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어렵다는 느낌보다, 누구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같은 인상이 더 강했습니다.
바다 도시 부산과 잘 어울리는 외관 역시 기억에 남았습니다. 보통 성당이라고 하면 뾰족한 첨탑이 먼저 떠오르는데, 남천성당은 오히려 현대적인 삼각 구조와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배처럼 보였고, 실제로 부산이라는 도시와 굉장히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문 전 꼭 확인해야 할 주차 및 관람 에티켓
직접 다녀와보니 가장 현실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역시 주차였습니다. 저희는 교중미사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이미 성당 앞 주차장은 거의 가득 차 있었습니다. 몇 바퀴를 돌면서 빈자리를 찾다가 예상보다 시간을 꽤 허비했습니다. 평일이라면 조금 나을 수도 있겠지만, 주말 미사 시간대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 지하철 2호선 남천역이나 금련산역에서 이동하기 어렵지 않기 때문에 순례나 여행 목적으로 방문하신다면 지하철 이용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성당 내부는 실제로 미사가 진행되는 공간인 만큼 방문 예절도 중요했습니다. 내부를 둘러보는 관광지와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노출이 심한 복장보다는 단정한 옷차림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반바지는 삼가 주시고 치마도 무릎아래로 내려오는 길이 추천드립니다.
사진 촬영도 가능은 했지만 기도 중인 신자분들이 많아서 조용히 배려하는 분위기가 필요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런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더 편안하게 머물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에서는 늘 사진 찍고 이동하느라 정신없는 경우가 많은데, 남천성당에서는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있게 되더군요. 특히 내부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고 있으니 생각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남천성당의 백미: 푸른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모동산
남천성당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간은 역시 내부 스테인드글라스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높은 천장과 함께 거대한 푸른빛 유리가 시선을 가득 채웠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제 분위기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에 따라 색감이 조금씩 달라졌고, 내부 전체가 바닷속처럼 고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 특유의 바다 이미지와도 굉장히 잘 어울렸습니다. 알고 보니 남천 성당은 국내 최대 규모의 스테인드 글라스(빅토르 카시뇰 작품)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화려함보다 차분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내부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괜히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고, 평소 복잡했던 생각들도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미사 후에는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도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잘 정돈된 정원과 조각들이 이어져 있었고, 중간중간 잠시 멈춰 서 있게 되는 공간들이 많았습니다. 평소에는 늘 시간에 쫓기며 이동하는데, 이날만큼은 일부러 천천히 걷게 되더군요. 가족들과 함께 걸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줄어들고 각자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게 되는 분위기가 참 좋았습니다. 저는 원래 여행지에서 오래 머무르는 스타일이 아닌데, 남천성당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종교를 떠나 부산에서 조용히 쉬어갈 공간을 찾는 분들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만한 장소였습니다.

순례 후의 소소한 행복: 성당 카페와 꽈배기
솔직히 가장 예상 밖이었던 건 성당 카페였습니다. 보통 성당 안 카페라고 하면 간단한 자판기 정도를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꽤 아기자기하고 정성스럽게 운영되는 공간이었습니다. 봉사자분들이 직접 음료를 준비해 주시는데 분위기도 굉장히 따뜻했습니다. 무엇보다 가격이 정말 부담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팥빙수를 먹고 싶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양도 많고 팥도 듬뿍 올라가 있어서 오히려 일반 카페보다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팥빙구 밖에서 사 먹으면 만원 가까이하는데 가격도 3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역시 깔끔했고 쉬어가기 좋았습니다. 순례를 마치고 잠시 앉아 있으니 여행 중간에 작은 쉼표가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성당 근처 꽈배기 가게에도 들렀는데, 이미 동네에서는 유명한 곳인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갓 튀겨낸 꽈배기 냄새가 골목에 퍼져 있어서 그냥 지나가기 어려웠습니다. 달콤한 간식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니, 종교적인 의미뿐 아니라 여행 코스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천성당은 단순히 신자들만 찾는 공간이라기보다 부산 여행 중 잠시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장소에 더 가까웠습니다. 광안리나 해운대처럼 활기찬 관광지도 좋지만, 여행 중 한 번쯤은 이렇게 천천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부산 성지순례 마무리
부산 남천성당은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방문해도 좋고, 부산 여행 중 조용히 쉬어갈 장소로 들러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희년이라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지만, 꼭 특별한 시기가 아니어도 남천성당이 주는 차분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공간은 충분히 방문할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성당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모동산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게 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부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광안리 바다를 보기 전이나 남천동 근처를 지날 때 남천성당을 일정에 넣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주말 미사 시간대에는 주차가 어려울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하고, 내부에서는 조용히 머무는 예절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저에게 남천성당은 단순한 방문지가 아니라 마음이 쉬어간 장소로 남았습니다. 가톨릭 신자 분이 아니시더라도 부산 여행지에 넣어보시는 것 추천드립니다.